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미 롤린스 (문단 편집) === [[필라델피아 필리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dn.bleacherreport.net/104943673_crop_650x440.jpg|width=100%]]}}} || 어머니가 [[소프트볼]] 선수라서 어릴 때부터 자연히 방망이와 공을 접했다. 가족들도 모두 운동에 능한 집안인데, 그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이 지미 롤린스였다. 1996년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에 2라운드에 지명을 받고 마이너리그에서 4년간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2000년 확장 엔트리 때 잠시 메이저리그의 맛을 본 후, 2001년부터 본격적인 풀타임 시즌에 들어갔다. 풀타임 첫 해 성적은 0.274 14홈런 54타점 46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하면서 유격수 및 신인으로서는 대단히 준수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 해 신인왕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신인왕을 차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성적인데, 그 해 같이 나온 신인이 [[알버트 푸홀스]]와 [[로이 오스왈트]]라서.] 또한 [[알버트 푸홀스]]와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신인으로서 올스타게임에 뽑히기도 했다. 그 뒤 팀의 주전 유격수로서 꾸준한 공격력을 보여줬다. 수비력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막장 수준의 수비력은 아니었다. 공격력은 리그에서도 빼어난 수준으로 평가받았는데, 매년 3루타를 10개 가깝게 치고, 도루를 30개 이상 할 정도의 빠른 발과 항상 180개 이상은 칠 수 있는 컨택, 그리고 두 자리 수 홈런을 치는 펀치력을 바탕으로 필리스의 주전 유격수이자 톱 타자로 활약했다. 도루 실력과 간간히 나오는 펀치력은 어릴 적 그의 우상인 [[리키 헨더슨]]의 최전성기만큼은 아니라도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은 되었다. 최고의 모습은 2007년. 이 해 타율 0.296에 30홈런 94타점 41도루, 38 2루타 20 3루타를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4번째로 홈런, 도루, 2루타, 3루타를 모두 20-20-20-20 이상 기록한 선수가 된 동시에, 유격수로 [[30-30]]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30(홈런)-30(도루)-30(2루타)-20(3루타)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https://m.sport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224&aid=0000004070|출처]] 마침 팀이 막판 [[뉴욕 메츠]]를 제치고 극적으로 지구 1위를 차지하는 임팩트까지 겹치면서 그는 [[맷 홀리데이]]를 제치고 리그 MVP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에는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있었지만, 11홈런 58타점 47도루를 기록하며 필리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생애 첫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했다. [include(틀: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베스트 팀)] 2009년까지는 건강했던 롤린스는 그러나 2010년부터 잦은 부상으로 결장이 잦아졌다. 2010년에는 KIA에서 방출당한 전설의 용병 [[윌슨 발데스]]에게도 주전을 밀리며 88경기 출전, 2011년에는 137경기에만 출전했다. 전성기인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못해도 150경기 이상은 출전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 여기에 성적도 꾸준히 하락세를 그렸다. 하지만 2011년에는 오히려 롤린스도 롤린스지만 [[체이스 어틀리]]가 부상으로 넋을 잃은 시즌을 보냈고 [[라이언 하워드]]까지 신나게 풍기짓이나 하는 마당에 [[셰인 빅토리노]], [[헌터 펜스]]와 함께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도루나 수비를 제외한 공격 비율스탯은 실망스럽기 때문에 2011 시즌 종료 후에 FA로 풀리는 그를 필리스가 굳이 잡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루벤 아마로]] 단장은 롤린스를 잡을 의지를 표명하였기 때문에 홈 디스카운트를 전제로 필리스 잔류 가능성도 어느 정도 예상되었고, 선수 본인은 5년 계약을 원한다고 하는데, 나이와 커리어, 전망을 감안하면 대개 4년을 넘어가는 계약은 페이롤 압박이 큰 필리스에겐 무리라는 평과 팜에는 프레디 갈비스라는 좋은 유격수가 대기하고 있다 보니 협상에 있어 난항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롤린스는 3년 $33M 보장 + 11M 베스팅 옵션 계약에 합의하여 필리스 복귀가 결정되었다. 롤린스는 자존심을 약간 굽히면서 실속을 챙겼고 필리스는 페이롤 유동성이나 규모 면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대우를 잘 해줬다는, 양측에게 모두 좋은 계약으로 호평받았다. 현지 언론에서는 아직 한창인 나이의 롤린스 계약을 두고 [[http://www.csnphilly.com/blog/phillies-talk/post/Rollins-will-become-an-all-time-great-Ph?blockID=614756&feedID=693|역대급 필리(all-time great)]]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설레발까지 나오기도 했다. 2011년 초반엔 팀 사정상 [[후안 피에르]]에게 1번을 내주고 3번을 치기도 하며 고생하였다. 타율과 출루율도 '''똥망'''하며 [[헌터 펜스]]와 함께 필리스 타선의 물방망이화의 주범으로 꼽혔다. 그래도 딸이 태어나 출산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분유버프를 받았는지 출산휴가 이후 32경기에서 7홈런 .315 .351 .580로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다시 부진에 빠지며 타율이 2할 중반대로 떨어져서 시즌 막바지에 이르렀고, 8월 30일 경기에서는 팝플라이를 치고 안일한 주루 플레이를 펼치다 [[찰리 매뉴얼]] 감독에 의해 본보기성으로 교체되기까지 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할 5푼 타율에 23홈런 30도루. 수비도 최고는 아니어도 평타 이상을 찍어줬으며 타율은 떨어졌지만 완전히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적당한 파워를 다시 보여준 시즌이라 하겠다. 시즌 종료 후 필라델피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2013 시즌에는 홀로 160게임을 출장하며 유격수 자리에서도 준수한 수비를 보이는 등 분투했으나, 정작 공격력에서 장타력도 까먹고 달랑 홈런 6개만 쳐내는데 그치며, 필라델피아가 물타선이 되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2014년에는 [[찰리 매뉴얼]] 감독의 후임인 [[라인 샌드버그]] 감독과의 불화설까지 제기되는등 이래저래 침체를 겪으면서 3할을 치는 어틀리의 파트너로서 그냥저냥 제 할 일은 해주는 편이다. 2014년 6월 14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2235번째 안타를 치면서 기존에 [[마이크 슈미트]]가 가지고 있던 프랜차이즈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기존 최고 기록자인 슈미트가 경기 중에 나와서 축하해 주었고 롤린스 본인도 기록은 홈에서 세우고 싶다고 밝혔는데 소원도 성취했다. 시즌 최종 .243 .323 .394 17홈런 55타점으로 유격수치고 나쁘지 않으나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필리스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성적을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